하늘이 잿빛으로 내려앉은 어느 오후,
좁고 긴 골목길은 마치 기억의 심연처럼 깊숙이 이어진다.
전봇대에 걸린 전선들은 뒤엉킨 사연 같고,
집집마다 낮게 드리운 처마는
마치 누군가의 말 없는 위로처럼 고요하다.
이곳은 한때 사람들이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삶’은 바쁘거나 화려하지 않다.
도시 한편에 비껴나 있는,
조용한 하루하루가 쌓인 공간이다.
길바닥의 벽돌 틈엔 잡초 하나 없이 정돈되어 있고,
누렇게 칠해진 담벼락은 세월의 더께를 그대로 품고 있다.
누가 이 골목을 일부러 찾겠는가 싶지만,
이곳은 분명히 ‘누군가의 세계’다.
비가 오면 담벼락을 타고 물이 흐르고,
여름이면 담 너머로 자란 감나무 가지가 길게 뻗어 나올 것이다.
때때로 자전거가 지나가고,
아이들의 발소리가 울려 퍼졌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조용하지만,
그 조용함 속에는 오래된 삶의 온도가 있다.
이런 골목을 걷다 보면 문득 깨닫는다.
건축은 때로 위대할 필요도, 특별할 이유도 없다는 것을.
그저 그 자리에 오래 머물러,
사람과 함께 숨 쉬어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존재의 이유가 된다는 것을.
이 그림은 그런 골목 하나를 붙잡아 두었다.
잊히지 않도록, 잃지 않도록.
당신은 이런 길을 마지막으로 걸은 게 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