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이 있는 집, 재건의 흔적을 따라

2025.05.02

 

이 골목 어귀를 돌면 마주하는 집은 한때 ‘국민재건주택’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건물이다. 1956년, 전쟁의 잿더미 위에 삶을 다시 세우기 위해 정부가 추진했던 이 주택은, 단순히 피난처를 넘어서 당시 한국 사회의 주거문화 전환을 이끌었던 작지만 중요한 실험장이었다.

그림 속 집은 정갈한 기와지붕 아래 담백한 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벽돌 굴뚝이 당당하게 솟아 있고, 방마다 각각의 굴뚝이 배치되었던 당시의 흔적이 생생하다. 이는 단순한 온돌의 흔적이 아니다. 좌식 생활에서 입식 생활로의 전환을 실현하고자 했던 평면계획의 산물이다. 마치 거실이라는 개념이 낯설던 시절, ‘대청’이라는 9평 남짓한 공간이 ‘리빙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도 이 집에서 비롯된 작지만 의미 깊은 변화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화장실의 분산 배치다. 하나의 중심 공간에 위계가 정해져 있던 기존 한옥이나 판잣집과 달리, 기능의 독립성을 인정한 구성은 당시로서는 매우 실험적이었다. 이는 가족 구성원의 사생활을 처음으로 배려하기 시작한 물리적 조치이기도 하다. 길게 뻗은 담벼락 안쪽에서 이런 조용한 변화를 담아내던 집은, 그 시대의 불편함과 희망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이제는 철망 위로 담쟁이가 자라고, 골목 끝 전신주의 전깃줄은 옛날보다 훨씬 많아졌지만, 이 집은 여전히 ‘재건’이라는 단어를 품고 있다. 파괴에서 복원으로, 전통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그 이행의 정점에 선 주거 형태. 재건주택은 단지 벽돌과 기와로 지어진 작은 집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새로운 문화를,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그리고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기 시작했던 ‘터전’이었다.

굴뚝은 여전히 남아 있다. 연기가 오르지 않아도,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해도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